예전에 친했던 친구가 책으로 추천하던 '그리스인 조르바'. 본가에서 요양하다 서울로 올라가는 KTX를 타기 3시간 전. 집에서는 잘 못느꼈던,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 기분 나쁜 울렁거림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올레 TV에 있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구매했다. 엄마한테는 무료라고 거짓말했지만.
1960년에 개봉된 건 몰랐지만 흑백 영화인 것을 제외하고도 오래된 영화만의 묘미가 있더라. 특히, 파도에 흔들리는 배 씬을 찍을 때 그리스 전통 음악 때문인진 몰라도 그 모습이 참 귀여웠다. 카메라로 연출하는 것 같은데 배우들은 최선을 다해 배가 흔들리는 연기를 하다니.
이번 포스팅에 영화 줄거리는 따로 적지 않는다. 다른 리뷰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기도 하고, 사실 본 지 2주가 지나 잘 기억이 안난다. 대신 기억이 남는 두 장면을 기록하고 싶다.
1. 거리낌이 없는 조르바
- 조르바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철판이 두꺼운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넉살이 좋은? 본인의 감정에 굉장히 충실하고, 또 자기 의견을 주장할 때 만큼은 단호하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으로 주변에 있다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상대이다. 마초같으면서도 아이같고, 그러면서도 아픔을 가지고 있는. 한 때 굉장히 부러워했던 성격의 그가 영화 중간중간 흘리는 이야기를 듣자면, 정말 땅 밑까지의 아픔을 겪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지. 하고 일어나 ‘본능'과 '현재'에 충실한 성격만 남은 사람 일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입체적인 인간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안소니 퀸(이 영화를 보고나서 미친듯이 빠졌다.)이었기에... 덩치 크고, 아이같고, 마초같은 안소니 퀸이 아니었다면 이만큼 조르바에게 매력을 못느꼈을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정도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아픔을 겪고 있는 나에게 삶을 포기하지 말고, 그동안 너를 가둬놓았던 그 '기준'들을 깨버리고 너 자신이 되라는 그러면 정말 행복할 거라는 메세지를 던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기가 필요한데. 광기라는 것도 한 번에 생기지 않기 떄문에 매번 연습을 해야되나? 아니, 그냥 내 감정이 가는 대로만 해도 절반은 할 듯 하다.
지금 내가 주로 느끼는 감정은 '불편함'인데, 그 불편함의 이유는 바로 '정상적이지 않은가'하는 질문 떄문이다.
"회사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내가 이상해 보이면 어쩌지?" (하지만 하고 싶은 건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행동은 한다. 그래서 혼자다. 하하)
"내가 이 말을 함으로써 이상한 사람 취급 받으면 어쩌지?"
타이밍이 나쁘게도 개인의 의사 확인없는 조직개편과
그로 인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업무, 동료 간 스트레스가 반복됐고 그 덕분에 나는 '분노'와 '혼란'이라는 감정에 휩쓸려 저 '정상성'의 기준을 타인에게 맞추며 살다 얼마 전 쓰러졌다.
내 몸이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는 나를 먼저 걱정해야되는 게 먼저인데도 저 위에 쓴, 이미 나에게는 사고의 로직 첫 번째 관문이 되어버린 저 생각에 불과 어제까지 몇 날 몇일을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읽은 '이석원'의 '나를 위한 노래'를 보면서 '정상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정상성'에 대한 완전무결한 정의는 없다. 이 '정상성'은 사람마다 다른 개인적인 것이다. 즉, 단어를 정의하는 사람은 나인 것이다.
그걸 글로 쓰며 책을 읽다보니, 오늘 마주해야 할 일로 인한 긴장감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물론, 아침에 일찍 눈이 자연스럽게 떠졌고 압구정로데오역 출구를 나오면서 몇 번을 침을 삼켰는 지 모르지만.
조르바는 원래 지금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내가 몸과 마음이 쓰러질 정도로 겪은 이 과정을 수없이 겪었기 떄문에 가볍고 여유있는 존재가 됐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영화 상의 조르바처럼 현재를 즐기고, 가볍게, 하지만 자기 주관은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나로서는 더이상의 아픔은 그만 겪되 스스로 세계를 정의하면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다.
이 방법을 찾는 게 나만의 광기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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