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많은 프로그램에서 패러디하는 장면으로만 접해 우스운 상황인 줄 알았는데 영화에서의 처절한 표정연기 때문에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장면이었다.
영화 초반, 용호(설경구)는 위험해보인다. 초대하지 않은 동창회에 갑자기 등장하더니, 대화 중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을 밀친다. 진짜 미친사람이라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 이상하게 생각하는 동창들의 시선은 뒤로한 채 혼자 난리를 치다 갑자기 철교 위로 올라간다. 사람들은 놀랐고, 기차는 지나갔지만 다행히 반대편 철로의 기차가 지나갔다. 용호는 내려오지 않고 여전히 철로 위에서 소리 지르고 있었고 이제 친구들은 시선을 거둔다.
단 한 친구만 '왜그래'를 반복하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이 영화는 철로 아래에서 용호에게 어서 내려오라고 애처롭게 부탁하는 친구 질문으로 시작한다. 도대체 용호는 왜그럴까.
1부 끝.
이 영화는 4-5개의 단편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용호. 자세히 보면 뒤로 이동하는 기차를 따라 시간을 거슬러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 왜 그가 미친사람이 되었고, 왜 "나 돌아갈래!"라고 이야기하는 지 이해가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는 군인과 갓 경찰이 된 용호 이야기이다. 용호는 1980년 군인이었고, 갑작스럽게 민주화운동 진압 현장에 투입된다. 정신없는 현장. 용호는 군대 선임과 단둘이 기차 뒷편에 몸을 피했다. 선임은 빨리 부대원들과 합류하기 위해 빠른 움직임을 재촉하지만 용호는 발에 물이 차서 못걷겠어요. 라는 이상한 말을 하며 군화를 벗어 뒤집는다. 그 군화에서는 물 대신 피가 쏟아졌다.
놀란 선임이 다른 부대원들을 데려오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숨어있던 여학생이 바들바들 떨며 나타나 집에 보내달라고 이야기했고 처음엔 놀랐지만 얼른 가라며, 동료들을 속이기 위해 위장사격을 하다 실수로 여학생을 죽인다. 그리고 그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여학생의 시신을 붙잡고 엉엉 운다.
이후 그는 경찰이 됐다. 이제 막 경찰이 된 그는 노동조합 고문을 담당하는 팀의 막내였다. 아직은 앳된 얼굴을 한 그는 선배들의 권유로 한 노조원을 고문하게 된다. 뒤에는 선배들이 보고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라는 생각과 '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도 그들처럼 해야된다.' 군인 떄와 똑같이 그의 성향과 반하는 행동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그는 폭주했고, 그 선배들보다 더한 고문 강도로 노조원이 똥을 지리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 용호는 거짓말이 능수능란하고 죄의식이 사라진 사람이 된다.
나는 지금 5년간 다니던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로 얼마 전 사무실에서 거의 쓰러져 병가 중이다. 이 회사에서의 스트레스의 요인은 굉장히 많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심했던 건 "저 사람들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었다.
같이 일을 하고, 이 조직문화에 대해 알게 된 지난 2년 간 계속 경계했다. 혹시나 저 사람들처럼 '확증편향'에 빠진 어른이 될까봐.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어느새 이들과 같이 '그러는 척'하는 삶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서워졌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기생충처럼 앞, 뒤가 다른 사람이 될까봐. 그런 상황에서 받는 스트레스 속에서 회사 생활을 간신히 지탱해나가던 중 몸과 마음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버틴 내 자신이 미련스럽고, 이런 거지같은 조직문화에 대해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는 회사가 증오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용호처럼, 주위 환경때문에 내 가치관과 다른 삶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어서.
돌아보면 난 지난 5년 간 계속 그랬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험담하고 약한 사람을 밟아 짓누르는 게 당연했던 이 회사에서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음으로써 내 가치관을 지켜왔다.
우리엄마는 이 상황을 다 알고 있지만 참 미련하다고 그랬다. 하지만 만약 내가 기회주의자처럼 남을 비난함으로써 살아남았다면 나는 내 실력을 키우지 못했을 거고 어디에도 갈 수 없이 이 조직에만 머물러 있었을 수도 있다. 잘못된 걸 알지만 이미 내 선택을 멈출 수 없었던 나는 그들처럼 되지 못하고 결국엔 용호처럼 처절하게 미쳐버려 자살했겠지.
용호의 상황은 역사적인 상황과 맞물려 '상황'이 얼마나 '사람'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지도 보여준다. 나도 그래서 지난 3년 간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타이밍'을 아쉬워했었지.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다른 생각이다.
어떤 '상황', '타이밍'에서도 타인을 함부로하지 않는,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상황'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맞지만, 그 '상황' 속에서 '선택'을 하는 것도 바로 나 자신이다.
나와 맞지 않는 상황이 얼마나 개인을 파괴시킬 수 있는 지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지 명확하게 알려준 영화 박하사탕. 순수하게만은 살 수 없겠지만, 나와 맞지 않는 가치관으로 인한 선택으로 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진 않다.
내 소감과 별개로 설경구 연기는 미쳤다. 특히 그의 눈빛연기. 20대부터 40대까지 20년의 시간을 '설경구' 한 사람이 연기하는데 모두 그 나이대처럼 보인다. 정말 대단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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