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드디어 출국 날이다.
아침 6시 30분에 울리는 알람을 끄고 전기장판의 열기가 가득한 이불 안으로 몸을 웅크렸다.
앞으로 한 달간 누리지 못할 이 따뜻함을 조금 더 즐기기 위해.
하지만 오래지 않아 몸을 다시 일으켰다.
출국 당일이지만, 그 전에 부렸던 게으름으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성당 다녀오기였다.
거의 5년 만에 성당을 간 냉담자지만
이번 여행은 히말라야 산행도 있기 때문에 안전을 기도하고자 여행 전 급히 성당을 찾았다.
비록 성당을 가진 않지만, 크게 감사할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찾는 신앙심 있는 신자이니 굽이 살펴봐 달라고...^^
성당 방문 후, 내과에 가서 접종 증명서를 발급받고, 비아그라를 처방 받았다.
바로 그 비아그라. 고산병 대비약으로 아세타졸을 받으려고 안과에 갔으나,
일말의 부작용(피부가 다 벗겨지고, 그 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음)을 들은 후 대안으로 처방받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떠오르는 병원 접수 담당자와 약사의 표정, 그리고 그들의 질문.
"정말 본인이 사용하실 거/처방받으신 거 맞죠?"
아무튼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나니 저녁 6시.
면세점에서 딱히 살게 없어 2시간 전에 가려고 했으나,
가서 책이나 읽자는 마음으로 비행기 시간 3시간 전인 7시 30분 버스를 탔다.
출발하기 전, 기념 셀카 한장.
7년 전 산티아고 걷기 전 찍었던 사진과 비슷한 구도로 찍어봤다.
저 셀카를 찍을 때만 해도 나는 미처 알지 못했지.
조금만 더 늦게 출발했다면 100% 네팔에 도착하지 못했을 거라는 걸.
인천공항에 도착해 체크인 게이트를 찾아가자마자 입이 턱 하고 벌어졌다.
거짓말 안하고 내 앞에 한 300명은 있는 것 같았다.
한 때 영종도로 출, 퇴근하며 인천 공항을 자주 방문했었지만
이 정도로 줄이 긴 체크인 게이트는 난생 처음 봤다.
알파벳으로 구분되어 있는 체크인 데스크 앞에 있는 ㄹ자 가이드라인을 넘어
한 알파벳 부스 둘레를 반 바퀴 둘러쌀 정도로 줄이 길었다,
'아, 여행 시작부터 재밌네.' 라고 생각하며 별 생각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몰랐지. 이 긴 줄이 진짜 HELL의 시작이었던 것을.
[1차 HELL] 무한 '죄송합니다'와 RUNNNNNNNNNNNNNNNNNNNNNNNNNN
체크인을 끝내고 나니 22:35분. 체크인만 2시간이 걸렸다.
비행기 표를 봤더니, 23:35분 출발인 내 비행기의 탑승 마감시간은 23:00.
그리고 내 입국 심사를 위해 내 앞에는 앞서 기다렸던 체크인 줄 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22:30분 이후에는 인천공항의 5개의 입국심사대 중 단 1개만 운영하기 때문이다.
2시간을 줄서며 지친 마음 + '설마, 놓치겠어'하는 막연한 기대에 아무생각없이 줄 서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 여자가 등을 두드리며 본인 비행기가 23:00에 탑승 마감이라고 줄을 양보해달라고 한다.
알고 보니 같은 비행기였던 나는 '나도 같은 거야.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지' 라고 대답하고 시계를 봤는데 22:45.
탑승 마감 15분 전이다. ^^
바로 뒤돌아서 '야, 우리 안될 거 같아. 우리 뛰어야할 거 같아' 라고 말한 뒤,
그 친구는 영어로, 그리고 나는 한국어로 우리의 사정을 말하며 무한 죄송합니다를 말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다들 흔쾌히 양보해준 덕분에 우리는 그 많은 인파를 5분 안에 뚫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단 10분이었고, 입국심사대에서 비행기 탑승구까지는 끝에서 끝이었다.
그냥 걸어도 1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나는 8kg 배낭을 메고 가야했다.
어떡해 그럼? RU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 뛰어야지.
러닝화 신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오조 오만번을 하며 죽기살기로 뛰어
5분 만에 도착한 탑승구에는 아까 체크인 할 때 봤던 300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게이트 마감 전에 왜 사람들이 있냐고? 왜냐면 체크인 게이트가 안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이트는 한참 뒤인 23:30분에 열렸다^^.
덕분에 나는 무릎 통증을 얻고, 등을 흥건히 적신 땀을 말린 후 쾌적한 탑승을 할 수 있다^^.
땀도 흘렸으니 편하게 자야지. 라고 긍정 회로를 돌렸지만,
하늘은 나에게 또다시 '방심은 금물'이라며 2차 헬게이트를 열어주었다.
[2차 HELL] 기내에서 노래 부르고, 승무원에게 '오빠야'를 외치는 아주머니가 내 옆자리.
비행기 내 좌석은 27E.
2:4:2 로 배치된 좌석 중 'ㅇㅇ●ㅇ' 바로 이 검은색 자리였고,
이 줄에는 모두 남아시아계 남자들이 앉아있었다.
어디 국적 사람인지 모르고, 인도를 가기 위해 경유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기에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잠은 다 잤구나. 망했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2명 좌석 중 창가 자리에 앉은 남아시아계 남자가 나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아니 왠 횡재가?' 하는 마음으로 오브 콜스를 외치고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왜 그가 이 좋은 자리를 두고 가운데 자리로 옮긴 지 여실히 깨달았다.
옮긴 좌석의 옆자리에는 무례한 K-아줌마가 있었다.
K라는 칭호를 빼고 싶을 정도로 무례하신 분...
그녀의 다이나믹한 무례함에 대해 간단하게 읊자면,
1) 비행기의 바퀴가 지면에서 떨어질 때,
말 그대로 정말 '이륙' 할 때까지 스피커폰으로 남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남자친구분과의 대화는...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해'와 비슷한 결의 대화였다.)
2) 뒷자리에 앉은 남아시아계 남성분이 옆자리 친구와 얘기하자, '너 시끄러워. 조용히 해' 라고 말했다.
3) 남승무원을 부를 때 그의 옆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4) 자꾸 신상을 캐는 질문을 하길래 귀찮아서 틀어준 TV에서 복면가왕을 보다
갑자기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5) 남승무원이 지나갈 때 뜬금없이 '오빠야~'하면서 그를 놀래켰다.
사업차 비행기를 여러번 탔다고 말하지만 TV를 틀 줄도 모르고,
기내식으로 나온 딸기쨈을 빵에 바를 줄도 모르는 모순적인 그녀...
본인이 노래부르는 걸 좋아해서 내가 앞에 나가서 부르라면 부르겠다고 하기에
정색하면서 '어우 싫어요.'라고 말하며 날 귀찮게 하는 건 컷 할 수 있었지만
다른 나라 사람을 하대하는 행동을 할 때는 정말... 같은 한국인으로서 너무 부끄러웠다.
게다가 본인이 생리 첫 날이라(TMI) 너무 예민하다면서,
몸을 계속 뒤척이고 바닥을 발로 여러번 차는 바람에 나는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내가 제지할 수 있는 선을 넘은 그녀의 행동을 어쩌겠는가.
업보겠거니, 하고 자다, 깨다가, 기내식 먹기를 반복하며 8시간을 버텼다.
그 와중에 먹고 싶었던 밥도 내 앞에서 다 마감되서 ㅋㅋㅋㅋㅋㅋ 면을 먹었다.
맛있었지만...^^ 운이 이렇게도 안풀리는구나~ 싶었던 하루^^.
(그래도 밥은 맛있었다^^!)
거의 36시간을 깨어있는 가수면 상태로 경유지인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 도착.
네팔로 가기 위해 공항에 있는 커피빈(!) 매장에서 옆자리 K-아줌마에 대한 분풀이 글을 쓰며 3시간을 버틴 후,
드디어 네팔로 출발.
비록 3시간을 더 가야하지만 이 긴 여정에 끝을 보여주는 저 화면이 얼마나 반가운지.
한국에서 타고 온 비행기보다 오래됐지만 좌석은 더 넓고 편안한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네팔로 출발했다.
마치 90년대 게임 실행할 때 보이는 로딩중 화면의 기내 TV.
생긴 것과 다르게 겁나(!!!!!) 맛있었던 치킨 커리와 신기한 스틱 밀크.
그리고 한국을 떠난 지 15시간 만에... 드디어...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내 컨디션과 달리 맑은 하늘에 햇빛이 쨍하던 날씨.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그래도 그 따뜻한 느낌이 좋아 혼자 피식 웃었다.
드디어, 내가 한달을 머물 네팔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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