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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0 수면양말을 신었는데, 있잖아.

by 센슬리 2024. 10. 20.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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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말이 생각보다 따뜻해서, 보고싶어.

와 벌써 10월의 절반이 한참 지났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바람이 세게 불었고, 러닝쇼츠를 입은 다리에 닭살이 돋았다. 어제 저녁 폭식하고, 오늘 아침 배불뚝이 상태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참석한 러닝세션은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러닝하는 순간과, 그 이후 친구들과의 데이트는 너무 좋았지만 그 중간의 카페에서. 미묘하게 느껴지는 불친절한 상대의 태도에 기분이 나빴지만, 생각보다 꽤 자주 보는 사이라 우선은 넘겼다. 집에 와서도 그 사람의 태도가 신경쓰이는 건, 그 상황에서 할 말을 못해서 분한 기분인 걸까. 아니면 생각과 다르게 무례할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실망감 때문일까.
 
사람이 각자마자 못 견디는 순간이 있는데, 나는 그 떄 당시의 할 말을 못하면 여운이 길게 남는 타입인 것 같다. 섣부르게 말을 뱉지 않으려는 성격에 왠만하면 참는 성격이지만 나만의 선이 꽤 명확하다. 무례한 행동을 굉장히 싫어하고, 그게 세 번을 넘어가면 아예 선을 긋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 세번 동안은 가능하면, 이유가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티를 안내는 편인데, 화가 나는 건 똑같으니 혼자서 곱씹는 성격이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생각은 두 가지. 1) 화가 나는 상황을 빨리 잊는 미송이가 부럽다. 2) 대학교 때처럼 그냥 속 시원히 부딪히자. 2)는 당시는 편하지만, 생각보다 '싸움꾼'의 이미지가 꽤 오래 남는 걸 대학교 떄 경험한 이후, 1) 처럼 하려고 하는데 3번을 카운팅 하는 것 자체부터가 나는 잊기에 글렀다. 껄껄.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 화가 나고, 그 감정을 곱씹고, 부딪히는 상상이 되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고, 생각을 심어주자. 가 답이다.
 
오늘 마침 서랍장들을 뒤짚을 계획이었는데, 아까의 빡침에 곁들여져 꽤 많은 서랍장을 뒤짚었다. 1) 옷장, 2) 신발장, 3) 서랍장, 4) 욕실 수납장까지. 처음 수납장의 내용물들을 꺼낼 떄만 해도 앞이 깜깜했다. 신발장 하나만 엎었을 뿐인데, 이 좁은 원룸 바닥은 온갖 물품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게다가 생각해놓은 각각 물품의 위치가 있어, 하나씩 정리하면 되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다 뒤짚고 그 다음에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신발장을 뒤짚고 무력한 마음에 침대에 누워 2시간은 잠으로 회피하려 했지만, 발 디딜 틈 없이 바닥이 꽉 채워진 걸 보니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계획했던 1시간 보다 더 짧게 뉘었던 머리를 들고, 아래에 내려와 남은 수납장들을 다 뒤집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을 푸욱 쉬며, 장장 3시간 동안 방을 정리했다. 그렇게 설겆이와 빨래를 마치고, 먼지 가득 먹은 몸을 씻고 나와 나만의 공간에서 지금 하루를 리뷰하는 이 순간.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이다.
 
최근 한 한달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힘이 많이 든 시간들이었다. '힘들다' 의 정말 텍스트 그대로, 힘이 많이 드는 날들이 많았다. 우선 가이드러닝이 가장 컸을 테고, 두 번째는 외부 협업 건의 틀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일 터다. 그리고 루틴이 깨지는 하루들이 반복되며, 중심 잡는 법을 잃고 하루하루 되는 대로 산 날들이 많았다. 정말 최근 6개월 중 얼굴을 안씻고 잔 날이 가장 많은 달일 거다. 분명히 시간적 여유는 되었지만, 뭔가를 허겁지겁 챙겨먹고, 유튜브에만 정신팔려있었지, 나에게 편안한 밤을 선물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루틴과 중심이 꺠져가는 걸 자각한 건 이번주. 마침 근처 근무지인 친구네 인근 회사에서 미팅이 잡혀 점심을 제안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라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항상 만날 때마다 좋은 기운을 주는 친구라 기대도 많이 했다. 사실 나보다 더 사회 경험이 많은 친구라, 최근에 느낀 이 버거움과 무력함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볼까 했지만. 술도 없고, 또 내 고민으로 그 친구에게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아 그냥 그 고민은 접어두고 만나기로 했다.
 
근데 정말 신기하게 먼저 말을 터준 그 친구의 대화 덕분에 최근의 고민들을 정말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조금은 내려놓아도 돼'. 라는 말을 들었다. 최근 인스타 친구의 피드에서 본,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이 성공의 방법은 아니야'라는 말처럼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취미를 좀 다양화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러닝이 나에게는,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돼. 기록이 나지 않아도 돼. 인 취미였는데, 숫자가 있는 운동인지라 기록을 갱신하는 문화에 영향을 받아버렸다. 이번 가이드러닝을 뛰면서 시각장애 러너분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뛰었지만, 문득, 나는 이걸로 다른 러너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가 봉사활동에 순수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스스로는 진심으로 그 시간만큼은 상대만을 위해자는 생각을 한 나도, 나의 취미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위한 설명을 생각하고 있더라.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이상 러닝만으로는 내가 괜찮을 수 없겠구나. 그럼 뭘 더 해볼까. 생각했을 때, 생각났던 건 화초 키우기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체중계 옆에 화단을 만들고 싶어졌다. 애써서 잎사귀를 내고, 그 노력의 결과로 보여주는 영롱한 초록빛을,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겨울에 보고 싶은 걸까.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숫자가 연관이 없는,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나만의 취미를 잘 찾아봐야겠다.
 
- 그리고 다른 주제.
 
오늘 러너 친구들과 한참 얘기를 하다 헤어지는 상황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내 얘기를 하기에는 거리가 있던 친구들이라 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한 남자인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라. '남자는 되게 단순한데, 이건 명확한 거 같아. 너(나 말고 내 친구)가 한 말은, 상대에게 넌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줘서 너무 상처였을 거야.'. 최근 직장도, 개인의 삶에서도 여유가 생겨 삶을 곱씹던 중, 많이 생각나던 상대에게 연락을 할까 많이 망설였었다. 근데, 저 말을 듣고, 새 해를 핑계로 연락해봐야지! 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접었다. 내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실수였던 건 알았지만, 그 정도로 상처를 준 말이었다면 다시 연락할 자신이 없다. 
 
이래서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나보다. 그 떄의 내 상황을 후회해봤자 뭐 어쩌겠나. 그리고 그 상대의 냉철한 판단에 아쉬워해봤자 뭐 어쩌겠나. 그래도 정말 잘 됐으면 좋겠고, 정말 우연히라도 만나서 얘기라도 한 번 해보고 싶다. 
 
내일 회사에가서 이메일을 열면, 대행사의 부적절한 태도로 또 싸우는 상상이 머리에 떠오른다. 어떻게 싸울지, 뭐가 더 논리적일까. 가상의 3자를 머리 속에 세워두고 한참 열을 올리면서 나 혼자만의 독백(언쟁)을 하다가, 그런 나를 스스로 가라앉힌다. 괜찮아. 지금부터 힘 뺄 필요 없어. 보통은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고, 만약 일어나더라도 넌 그걸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2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 지난 5년 간의 기억은 아직도 내 삶의 방어기제가 되어 혼자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예기치 못한 상황에 굉장히 날 선 상태로 방어태세를 세운다. 만약 내 애인이라면 정말 마음이 아플 거 같을 정도로. 되게 감사한 건, 이런 시절을 겪는 동안 읽었던 책들이 알려준 방법. 너가 너의 가장 큰 지지자가 되어줘라. 
 
정말 근 몇 달 만에 집에서 편안하게, 기분 좋게 취하고, 내가 좋아하는 보들보들한 수면잠옷과 수면 양말을 신은 이 밤. 강렬한 자극은 어릴 때 충분히 많이 경험한 듯.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나를 우선으로 챙기고, 내 삶의 루틴을 꼭 지키기를.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기를. 나만의 주관을 가지기를. 하지만 그만큼 타인의 생각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꼭 가지기를.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마다 엄마랑 유럽에서의 기억이 생각난다. 최소한, 화이트 와인에 엄마와의, 그것도 유럽에서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난, 감사한 삶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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