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임팩트 있는 책이었다. 한동안 잘 작동하던 머리가 자주 과부화에 걸렸다. 명상을 게을리해서 그런가. 삐걱삐걱 거리기 시작하더니 잘 정리해놨던 옛 생각과 감정들이 다시 역류했고, 종종 폭발하기도 했다. 핸들링할 수 있는 수준이 넘었다. 라고 생각이 됐을 때 도서관에서 눈에 띈 이 책을 빌렸다.
'효과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법'과 같이 요즘 유행하는 주제의 실용서는 아니다. 오히려 과학서적의 느낌이다. 가설을 세우고 여러 비교 실험을 통해 결론을 내는 논문을 '인지과학'과 '의사결정'이라는 주제로 묶어놓은 책 같았다. 즉 읽을 때 재밌는 책은 아니었다. 장소와 상관없이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졸았는 지 모른다.
쉽게 잠이 오는 이유는 실험에 대한 서술이 길었던 것 뿐만 아니라 전문지식이 많아서 그런 듯 하다. 이 책은 위에 말했듯 '인지과학'과 이를 활용한 '의사결정'에 대한 책이다. 우리가 어떻게 정보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지를 신경과학의 온 분야를 총 동원해 200p 이상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 중에도 가장 흥미있던 정보들은 '전전두엽피질'의 기능이었다. 다들 '전두엽'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을 거다. '전전두엽피질'은 전두엽의 앞 부분을 구성하는 피질로 우리 뇌의 중앙관리자 역할을 한다. 시간을 관리하고, 계획하고 점검하는 '뇌'의 CEO라고 한다. 생각의 과부화로 자주 패닉에 되는 사람들은 '전전두엽피질'을 활성화 시키는 연습을 반복하면 패닉의 빈도와 강도를 줄일 수 있다.
'전전두엽피질'을 개발하는 방법은 1) 생각을 범주화하고, 2)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 필요한 정보만 저장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뇌는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뇌에 저장한다. 게다가 요즘은 일상생활 외에도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사용하는 시간도 많아져 우리 머리 속에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정보는 더 많아졌다. 때문에 우리는 주기적으로 정보들을 정리하는 '범주화'하는 분류 작업을 습관화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건 말이 쉽지, 접하는 모든 정보를 의식적으로 분류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때문에 작가는 한 가지 신박한 방법을 제안한다. '생각'과 '계획'을 외부에 외주하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거나 정보를 분류하다보면 여러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다이어트를 다짐했지만 운동은 가기 싫고, 좋아하지 않았던 친구의 행동이 변해도 예전의 기억을 덧대여 그 친구의 현재를 보지 못하곤 한다. 이건 당연하다. 우리 주변에는 의지를 세우지 않고도 날 즐겁게 해주는(EX. 유튜브) 것들이 너무 많다. 한 번 입력된 정보는 쉽게 바뀌지 않는 관성이 있어 그 역시 당연하다. 그럴 때 '외주'를 하면 된다.
"운동을 한다."를 예시로 들어보자. 행동을 계획했지만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거라는 계획은 없다. 가뜩이나 하기 싫은데 계획까지 세워서 운동을 하려니 귀찮음은 두-세배가 된다. 이럴 때는 특정 장소와 시간에 "운동하기"를 끼워넣는다. 마치 캘린더에 넣는 것처럼 나의 머리 속에 "아침 7시에 무조건 운동장에서 5km를 뛴다."라는 계획을 입력한다. 계획이 입력되면 나는 계획을 세울 필요 없이 운동복을 입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쉽지 않은 건 알지만, 이렇게 시간과 공간에 계획을 외주하면 늘 불안했던 마음이 잔잔해진다. 나같은 경우, "운동하기"만을 계획했을 때는 집에서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집은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홈 트레이닝을 하는 '운동의 공간'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침'이라는 시간과 '운동장'이라는 공간에 '운동' 계획을 외주하고 나니 집에서의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우리는 이렇게 혼재된 여러가지 기능들을 각 한 가지씩 분리함으로써 개별 계획들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나의 주의력, 집중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쉼이 필요하다. 휴식은 신체적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인지기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위에 말했듯 우리의 뇌는 무분별하게 정보를 흡수한다. 이후 우리가 의식적으로 분리를 하지만 이는 텍스트로 정리된 분류표일 뿐이다. 우리의 뇌가 이를 인식하고 체화시키기 위해서는 텍스트로만 되어있는 개별 정보들을 통합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쉼의 시간, '백일몽의 시간'이다. '백일몽의 시간'이라고 하는 이유는 수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의식을 흐릿하게 하는 모든 시간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명상, 몽상의 시간 모두가 포함된다. 이 때는 '전전두엽피질'이 아닌 뇌의 다른 부위가 관여한다. 계획하고 통제하는 CEO도 이 때만큼은 뇌에 자유를 보장해준다.
계획과 쉼의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의 뇌는 정보를 범주화하고 처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는 없다. 모든 정보를 처리하려는 건 뇌에 과부화를 주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내 책상 서랍같은 아무거나 막 집어넣는 '잡동사니 서랍함'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전에 읽었던 인지과학 책들을 보면 작가들이 모든 정보를 똑 뿌러지게 정리하는데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을 보면서 자괴감이 여러번 들었었는데, 이 '잡동사니 서랍함'에 대한 이야기를 보는 순간 마음이 되게 편안해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든든한 버팀목을 얻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잡동사니 서랍함은 용량이 무제한이 아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서랍함을 정리해주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인지과학' 파트 중 나에게 임팩트 있던 부분들을 정리해봤다. 250p부터는 '업무', '육아', '관계' 등 다양한 상황들에서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어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 두 가지는 1)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 분류하기 2) 기회비용 따져보기. 하지만 자세히 설명한 '인지과학'의 내용들만큼 크게 임팩트는 없어 간단하게만 기록하려고 한다.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좋은 책이었다. 작가의 주장도 그렇지만, '인지과학' 파트를 읽을 때는 자주 역류하는 옛 생각과 감정들을 명확히 분류하고 버릴 수 있었다. '의사결정' 파트를 읽을 때는 지난 회사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이었는 지 다시 한 번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새로운 지식이 주는 재미도 있었지만,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몰라 켜켜이 묵혀만 뒀던 오래된 먼지들을 깔끔하게 거둬내 머리 속을 깨끗하게 해준 책이었다.
머리 속이 복잡하고, 생각 정리가 잘 안될 때 보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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