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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여과기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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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슬리 2024. 9. 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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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고인물이 된 듯 했다. 분명히 시간을 보내며 살지만 맴도는 특정 감정이 수로를 막아 하루가 흐르지 못하고 고여있었다. 여과기능이 고장난 나의 삶은 자정작용이
되지 않아 이끼가 가득 낀 어항같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그 감정을 뒤집고 싶진 않았다. 아니 사실 처음에는 엄청 뒤집으려 했다. 싸울까. 혹은 대학원을 바로 등록해버릴까 등. 자격지심으로 점철된 팀 동료를 매일 마주치며 사는 것도, 나보다 10년 이상 업무 경력을 가진 사람들과 일을 하며 마주한 아직 부족한 내 모습도 답답하고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내 행동 뿐이었다. 8월 중순 이후 깨달음이 왔지만 감정 소용돌이로 많이 지쳐있던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하루하루 해야할 운동, 업무, 공부 정도만 지키며.

이끼 둥둥 떠다닌 수초위에 배영하며 누워있다가 오늘 한 번쯤은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저런 감정을 적으며 수조 내벽을 닦고, 수초와 찌거기들을 치웠다. 그러다 아주 오래된, 내 트라우마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을 마주했다. 내가 느끼는 불안, 걱정 등등의 감정이 증폭되는 감정증폭장치인 감정이다. 먼지와 수초, 이끼 등등 갖가지 것들이 붙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종종 기회될 때 정리하는 수준으로 다루었던 그 감정. 그런데 오늘의 생각/감정 정리 중 우연히 그 두꺼운 감정의 표피들을 걷어냈다. 정말 우연히.

내가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던 감정의 실체를 마주했다. 지난 기억과 달리 결국 내가 이겼던, 나에게 유리하게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그 당시 불편한 감정은 과정이었을 뿐 결론이 아니었던 것이다.

큰 먼지 덩어리를 제거하니 수로가 뚫렸고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 소관 밖의 일도 있지만, 그 상대와 함께 있는 환경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거다. 모두를 100% 만족시킬 수 없다. 내가 주관을 가져야 배우거나 수정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전부다 걷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도 또 막히지
않도록 감사일기, 확언,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페이스로.

Day 6.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