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 도시.
역시 여행의 마지막은 숙취인가.
크로아티아를 떠나는 마지막 날 결국
공항 변기를 잡고야 말았다.
불현듯 떠오르는 네팔에서의 맥주 파티들,
그리고 2박 3일 간 지속되던 숙취들.
엄마랑 여행했는데도
왜 이렇게 술을 마시는 지 모르겠다.
아니 엄마랑 여행했기 때문에 이만큼 마신 걸수도.
두브로브니크는 우당탕탕의 끝판왕이었다.
도착한 첫 날 바람이 엄청 불었고 파도가 거셌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며 흰 거품을 만드는,
그 거친 풍경을 좋아하는 엄마로서는 신이 나는 날씨.
성곽 위를 걸을 때 바람에 몇 번 넘어갈 뻔도 했지만
엄마가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마침 파도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카페가 있어
겨우겨우 도착해 기분 좋게 맥주 한 잔 하려는데
눈 뜨니 머리부터 발 끝까지 젖어있었다.
분명히 난 핸드폰을 들고 파도를 찍고 있었고
그 순간 하얀 파도가 눈 앞에 나타났다.
다시 눈을 뜨니 이미 파도가 내 몸을 휩쓸고 간 다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다와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도가 너무 쎄 온 카페를 덮쳤던 것이다.
같이 있던 사람들 모두 이 어이없는 상황에 웃는데
핸드폰과 명품 가방이 다 젖은 우리 엄마는 화 가득.
재밌다는 듯 껄껄 웃고있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카페에 앉아서 몸이나 식히고 가자고 했다가
된통 혼났다.
집에 와 엄마 가방뿐만 아니라
홀딱 젖는 내 가죽 치마, 가방도 소금물기 제거하고
남은 옷들 빨래할 빨래방 알아보고
다음날 강수확률 100%에 혹시 몰라
마트가서 먹을 것까지 미리 다 사오는 등
뒷처리 + 태풍 대비하느라 허둥대며 바쁘게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려와 달리 강한 비바람 대신 비만 내렸다.
매우 오바했던 어제 저녁 크크.
비도 안오겠다 빨래방에 가서 옷을 맡기고 오는데
엄마가 개똥을 밟고 미끄러졌다.
어제의 파도 샤워 이후 또 다른 코메디.
진짜 웃겨 죽을 뻔 했는데 또 혼날까봐
웃음 꾹 참고 엄마 부축해와서
위로의 posip 와인 한 병 까고
어제 미처 못 본 올드타운을 구경했다.
높은 성벽 안으로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진격의 거인 마을이 생각났다.
밖이 보이지 않는 높은 성벽에 의해 보호를 받지만
뭔가 억압되고 갑갑한 느낌.
집에와 엄마랑 또 다른 Posip 와인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침대에 누웠는데
엄마랑 같이 누워있으니 세상 편안한 느낌이었다.
내 마음 속 불안과 걱정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엄마 옆에 누워있으니 아주 작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엄마의 든든함인가.
날씨와 머무는 시간이 짧아 아쉬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오고 싶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