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포카라) 위로의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오캠)
*'덕분에'로 시작해 '행복해'로 끝난 나의 1박 2일 오캠
*당일치기 혹은 1박 2일 트레킹 코스
- 루트: 시작 KENDA/ 롯지 엔젤스/ 끝 DAMPUS
*롯지 음식은... 왜 다들 라면만 먹었다는 지 알겠더라
*짧은 힐링이 필요하다면 오캠 강추! (하트)
각성 N일 차.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보내고나니 어느새 3일 후면 나도 포카라를 떠나는 날이다. 체력은 그대로지만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몸을 하드캐리한 덕분에 잘 움직이던 중 윈드폴 사장님이 트레킹이 아쉬우면 오캠이라도 다녀오라고 제안을 주셨다.
오자마자 윈드폴에 있는 장비들 다 챙겼다가 배낭을 푼 게 엊그제같은데, 사장님 말씀에 반나절 고민하고 다시 짐을 쌌다. 윈드폴에서 2주 내 가방 두 번 싼 사람은 나밖에 없을 듯 ㅎㅎ
다음 날 출발한다고 삼촌들께 말하니 급 아쉬워하는 삼촌들. 알고봤더니 내일 보양식 파티를 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포카라를 떠나기 전 파티를 하고가고 싶은 마음에 사장님께 부탁해 파티를 하루 앞당기고 건강식 든든히 챙겨먹고 가게 됐다. 덕분에 체력 조금 회복!


Dammmmm good 보양식과 동충화초주!
다음 날, 오캠에 가기 위해서는 'KANDE'까지 차로 가야한다. 지프차나 텍시로 가야되는데 마침 ABC 트레킹을 가시는 부부 분이 있어 지프차를 얻어타고 가기로 했다. 어제부터 주변의 도움과 사랑을 받으면서 시작하는 오캠 트레킹 ㅎㅎ


지프타 타기 전 저 신나는 표정을 보라...^^ 매번 트레킹 가는 사람들 배웅만 하다가 내가 그 배웅을 받으니 느낌이 새롭더라. 겨우 1박 2일 가는건데 표정과 착장만 보면 EBC 가는 너낌^^ ABC를 가는 부부분들보다 내가 더 유난을 떨면서 갔다. 이 유난을 같이 떨어준 세정이, 정희 고마오 호호
그리고 출발. 부부 분들과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가는 길. 아니 근데 같이 간 아내분이 너무 성격이 쾌활하시고, 내 친구 어머님이 생각나 광주 분이시냐고 물어봤더니 맞았다 ㅋㅋㅋㅋㅋ 역시 광주 어머님들만의 유쾌한 에너지가 있어. 30분 좀 넘게 차로 달려 'KENDA'까지 무사 도착. 덕분에 서로의 도전을 응원해주며 가벼운 포옹을 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KENDA에 내려 오른쪽을 보면 아래와 같이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라고 써있는 이정표가 보인다. 뭔가 설레는 느낌. 햇빛도 좋고 기분도 좋아 '세븐틴-ready to love'를 들으며 트레킹 시작.


오캠 코스는 1시간 코스로 시간은 짧지만 계단이 많다^^ 오캠에 등산스틱은 오바였나했는데 가져오길 잘한 듯. 체력이 떨어진 탓인지 나는 꽤 힘들었었다. 그래서 올라가는 길에 사이다 하나 사서 걸었다, 멈췄다 반복하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그래도 길도 예쁘고, 오며가는 사람들과 '나마스떼' 인사도 나누니 정말 모험하는 듯한 느낌에 신나기도.




중간 즈음 왓을 때 갈림길이 나온다. 입구와 다르게 아무런 이정표도 없어 당황. 구글맵을 봐도 모르겠어서 당황하고 있는데 바닥을 보고 빵터졌다. 누군가 돌로 화살표를 만들어놨더라. 돌 이정표를 보니 2016년 산티아고 걸었을 때도 생각났다. 길 위에서만큼은 서로를 응원해주는 무조건적인 따뜻한 마음. 피식 웃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30분 마저 계단을 열심히 올라 도착한 오캠! 공간 자체가 Austrailian Camp라는 곳은 없고, 롯지들이 있는 작은 마을 자체를 오캠이라고 하는 듯 했다. 오늘 내가 잘 롯지(숙소)는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Angel's Guesthouse'. 길을 쭉 따라가면 제일 마지막에 있다.


고냥이가 마스코트인 엔젤스 게스트하우스 도착! 롯지는 텐트 타입, 일반 방갈로, 테라스 있는 방갈로 3가지 종류의 방이 있고, 각 방마다 가격은... 기억 안난다^^ 나는 어차피 1박만 하고 갈거니 일반 방갈로 선택. 여기 뷰가 미친다. 바로 내 앞에 마차푸차레 포함 안나푸르나 산맥 다 보인다. 특히 여기는 정말, 일출이 최고. 도착해서 방 받자마자 가방 두고 마당에 앉아 안나푸르나 산맥을 보면서 계속 감탄만 했다.
오랜만에 땀 흘린 뿌듯함과 내 앞에 펼쳐진 산맥에 대한 경이로움에 엔돌핀 뿜뿜. 전날 포카라 비건 카페에서 사온 머핀과 라떼 한 잔 시켜서 분위기 한 번 타주고.


옆에 있는 그네를 사람들이 산나게 타고 있길래 멀리서만 보다 나도 쪼르르 달려가서 같이 구경. 그리고 뷰가 너무 예뻐 산맥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그네도 탔다 :) 이 그네는 여기 랜드마크인 듯. 너무 잘 만들었어.

사진 찍고 산멍 때리고 있는데, 근처에서 한국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원래같았으면 먼저 인사를 했을 텐데 이번 트레킹은 그냥 나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외국인인 척. 근데 그 한국분의 가이드인 네팔리가 '한국분이세요?'라고 말을 걸어 얘기 시작.
한국인, 네팔리 가이드/포터 포함 총 3명이서 ABC까지 다녀온 길이라고 한다. 윈드폴에 있으면서 계속 한국인들을 만났지만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을 만난 건 오랜만이었는데, 선생님과 말이 되게 잘 통했다. 이분이 네팔에 온 이유도 나와 비슷했기 때문.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었지만 길 위어서였을까. 정말 가까운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오지랖을 부리며 내 경험을 얘기했다.
그리고 내 과정의 이야기들을 듣고는 선생님이 고맙다고 하셨다.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아니 정확히는 버티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던 것들이 다른 사람한테 도움이 되다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 시간이었다.
한 두시간 정도 썬베드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선생님이 간식타임을 갖자고 제안. 맥주도 사주신다기에 나도 얼른 동참했다. 난 여기 와서도 또 술이구나~ 맥주를 잘 안먹지만 이 날은 세 캔이나 들어가더라^^


신나게 한 바탕 놀고 쉬고나니 저녁. 밥 먹으러 레스토랑에 가서 메뉴를 보니 한국 메뉴들이 가득하다 ㅋㅋㅋ 라면은 물론 닭백숙까지. 역시 한국인들. 어딜 가나 있다.


낮에 먹은 맥주와 라면으로 배가 꽤 찼던 나는 볶음밥이랑 스프 하나를 시켰다. 낮만 해도 꽤 더웠던 날씨였는데, 해가 지자마자 엄청 추워져서.
아, 그리고 매번 말로만 들었던 '락씨' 나도 시켰다 ㅎㅎ 락씨는 네팔 전통 증류주인데 다들 롯지에서 먹는 락씨가 최고라며 얘기할 때 아쉬워만 했지만 드디어 오늘, 나도 시켰다. 신기한 건 락씨를 사케처럼 따뜻하게 데워주는데, 아- 소주 생각 안난다. 도수도 나랑 맞고. 지금 쓰면서도 입맛 다셔지네 ㅎㅎ 하지만 음식은... 그냥 그렇다^^ 뭐 산 중턱에 음식점이 있는 것만으로도 어디야! 하지만 다들 왜 올라갈 수록 라면만 먹었는 지 이해가 되는 맛이었다^^

락씨와 맹탕 스프, 그리고 어묵같은 치즈가 올려져있는 볶음밥


다들 추우니까 불 앞에서 열심히 불 떼는 중. 너무 웃긴 건, 불쏘시개용 상자가 신라면이다 ㅋㅋㅋㅋ 그리고 밥 먹는 내내 밥 달라고 앞에서 무서운 표정 짓는 아기맹수^.^
라씨도 한 잔, 아니 두 잔 했겠다. 밥 먹고 방에 왔는데 이대로 자기엔 아쉽더라. 가져온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밖이 떠들석해지기 시작. 아까 그네 사진을 찍어준 말레이시아 그룹이 캠프파이어를 하더라. 처음 본 사람에게는 말을 매우 잘 거는(그래서 모두가 의심하는 내 MBTI) 나는 남은 라씨 한 잔을 들고 스을쩍 자리에 앉아 같이 캠프파이어 시작. 낯선 이도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들과 편하게 얘기하고, 한국/말레이시아/네팔 각 나라 별 노래 돌아가면서 듣다가 내일 일출을 보기 위해 11시 쯤 파했다.

다음 날, 여섯시부터 밖이 소란스럽다. 추워서 잠을 잘 못잔터라 일출이나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도 일찍 일어났다. 아직 해는 안떴지만 눈에 반사되어서인지 어두운 와중에도 산이 보였다. 주변은 어두운데 산만 흰색으로 빛나 되게 신비로운 느낌. 사랑곶에서도 같은 모습의 산을 봤지만 오캠에서 더 가까이보니 확실히 압도감도 컸다.
7시 조금 넘어서였을까. 그 때부터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하늘을 반을 갈라놓은 듯, 위에는 검은빛이 흐려지고, 아래에는 붉은빛이 그라데이션으로 점점 진해졌다. 매일 뜨고 지는 해를 이렇게 자연에 파묻혀보니 경이롭다는 말 밖에 안나오더라.

지평선 너머로 동그란 태양이 올라오는 걸 한참 보고 있는데 문득 '아, 살아있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기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인생이 힘들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정말 강렬하고 순수한 빨간 빛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데 괜히 마음이 벅찼다. 조금 오버해서 '아, 이거 보려고 이렇게 힘들었었나.'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위로와 벅참을 한 번에 느낀 오캠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진 하나 찍어주고.

오믈렛과 스프 간단하게 먹어주고 다시 내려가기로. 풍경이 너무 좋아 하루 더 있을까 했지만 몸이 너무 추워 1박만 하기로 했다.

내려올 때는 꼭 'DAMPUS'로 내려오라는 윈드폴 사장님 말이 생각나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DAMPUS' 방향을 물어보니 갑자기 네팔리 그룹과 조인을 시켜줬다. 쟤네 따라가라고.
ㅋㅋㅋㅋ이 친구들과 급 동행 시작. 내려가기 전에 기념사진 서로 찍어주고~

대부분의 네팔 사람들이 영어를 잘해 여행하기 편했다. 이들도 마찬가지. 한국에서 왔다고하니 '블랙핑크'와 'BTS'를 얘기하면서 호의를 보여주는 그들. 영국 유학을 위해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블랙핑크 춤 추면서 깔깔거리면서 내려오다보니 어느새 거의 다온 DAMPUS. 얘들은 위에 산 한 번 갔다 갈 거라고 같이 가자고 제안줬지만, 어제 추위와 이들이 새벽까지 노는 덕분에^^ 소음으로 잠을 잘 못잔 나는 이들과 헤어져 DAMPUS로 갔다.

포카라로 돌아가려면 뭘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모른채 무작정 내려온 DAMPUS. 마을이 끝날 때까지 걷다보니 버스 한 대가 서있더라. 저질 체력에 잠도 못자서 그런지 급 피곤해진 나는 포카라 간다고 하는 말에 그냥 버스에 앉았다. 그리고 내려오는 동안 그냥 텍시탈 걸 10번 생각했다 ㅎㅎ
패러글라이딩 하러 갈 때보다 더 심한 구불구불한 산 길과 뜬금없이 먹던 오렌지쥬스를 달라던 옆자리 승객 때문에도 불편했지만, 절정은 차가 가다가 멈췄다. 비포장길을 내려오다가 바퀴게 돌이 꼈다 ㅎㅎㅎ 갑자기 버스에 탄 남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더니 한 30분 동안 돌 빼기위해 열일 중.

우여곡절 끝에 포카라 시내에 도착했고, 원래 걸어가려던 생각을 바로 접고 텍시타고 윈드폴로 복귀했다. 도착하자마자 '어서와'라며 따뜻하게 반겨주는 윈드폴 식구들. 1박 2일 코스였지만 왜 사람들이 트레킹을 다녀오고 이곳을 더 좋아하는 지 알게 됐다 ㅎㅎ
오캠은 나에게 위로와 고마움의 공간이었다. 윈드폴 사장님의 제안, 같이 지프 태워준 광주 부부 분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허심탄회하게 인생 얘기를 나눴던 선생님, 담푸스 가는 길을 알려준 네팔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쁨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은 한껏 따뜻하게 채웠던 오캠 트레킹. 이후에 쓰겠지만 여기서 한 번 힐링을 해 그 다음 안좋은 마음을 빨리 비웠던 것 같다.
아픈 이후로 ABC 트레킹을 취소하고 마음을 접었었는데 여기를 다녀온 후 언젠가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더 따뜻하고 즐거운, 우당탕탕한 추억들이 생기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