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포카라) 드디어 포카라
나는 맥주가 약하다. 그걸 알면서도 분위기에 취해 술을 먹는 나. 후회는 내일의 몫이다. 치트완에서의 숙취가 룸비니에서도 반복됐다.
짐도 하나도 싸지 않은 채 잠에 들어 AM 05:00부터 알람을 맞췄지만 내가 일어난 건 짐을 쌀 수 있는 마지노선인 AM 05:30. 부랴부랴 짐을 싸고 전날 머니에게 부탁한 툭툭 기사와 6시에 만나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정류장은 가깝지만, 짐을 한가득 끌고 집시존을 지나며 구걸당하고 싶지 않았기에 툭툭을 불렀다.



네팔에서 도시를 옮길 때마다 버스가 커진다. 이번 포카라로 가는 버스는 대형 ‘tourist'버스! 내 인생처럼 여행에서도 초반에 최악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어찌됐던 움직이는 사람이라 매일이 과거보다 더 나아지는 것처럼 여행에서도 매번 더 좋은 현재를 체험할 수 있으니까.
일찍 도착해도 차 문을 열어주지 않아 주위를 돌아보니 이 이른 시간에도 카페가 열었다. 대부분 탑승객들이 그 안에 오밀조밀 아침 먹는 중. 나도 네팔에 와서 좋아진 짜이티를 한 잔 시켰다. 놀랍게도 짜이티는 큰 냄비에 끓여서 건더기를 걸러서 주는 거였어! 어쩐지 곡물의 고소함이 있더라니.

남들보다 다리가 긴 나는 이번에는 무조건 앞자리를 사수했다. 버스티켓 예매할 때부터 front seat 무새. 그리고 마침내 앞자리를 얻어 행복한 175의 기념샷 :)

그리고 아까 산 짜이티와 함께 숙소에서 챙겨준 아침을 먹었다. 머니에게 부탁한 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지만 아침 프론트 직원이 미안하다며 급하게 요모조모 챙겨줬다 ㅠㅠ. 한국사람이라면 룸비니 갈 때 꼭 ‘Aloka Inn'에 가세요.

그렇게 달리고 달려 포카라로 가는 길. 반 쯤 왔나 싶을 때 옆을 보니 절벽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진으로는 잘 티가 안나지만 정말 70도 절벽이다. 룸비니에서 포카라로 이동하는 몇 없는 포스팅을 봤을 때 다들 가는 길에 꼭 엎어진 버스를 봤다고 했는데... 무한 망상충인 나는 검지와 중지를 크로스하며 제발 무사히 도착하기를 빌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의 거칠면서도 유려한 운전 실력에 전복사고에 대한 걱정은 덜했지만 나를 괴롭히는 게 있었으니, 바로 숙취였다. 지도가 보이는가. 거의 내 문신에 인생의 소용돌이로 그려진 곡선들 만큼이나 구불구불하다.
어제의 내 선택을 후회해봤자 뭐하나. 내가 저지른 일인 걸. 호텔에서 싸준 조식이 담겼던 봉지를 한 손에 계속 쥐고 얼른 시간이 흐르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9시간이 지난 후, 나는 포카라에 도착했다. 내가 진정으로 힐링을 하고 마음을 치유받은 곳.
포카라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한인숙소 ‘윈드폴’로 텍시를 타고 갔다. 텍시기사 아저씨는 600루피부터 부르는데, 구글 지도 찍었더니 10분 컷. 300루피로 끊고 텍시를 타고 갔다. 도착해서 얘기해보니 대부분 400-500루피를 내고 오더라 하하.

그리고 도착했다. 나의 제 2의 고향 윈드폴에^^. 사진은 마땅한 게 없어 마지막 날 떠날 때의 모습. 이 포스팅을 쓰면서 괜히 마음이 아련해지는 나의 주접이란...^^
방을 배정받은 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마침 윈드폴이 포카라의 유명한 ‘페와 호수’ 앞이고, 호수 산책로를 따라 식당과 카페가 많아 천천히 근처를 구경하면서 밥집을 찾기로 했다.
포카라 도착 첫 날, 나를 반겨줬던 따뜻한 페와 호수 :)

이 사진을 찍자마자 온 몸이 피곤해졌다. 원래 산책로 끝까지 걸어 현지 맛집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급 몰려오는 피곤함에 모험에 대한 욕구가 사라졌다. 그 때 눈 앞에 보인 한식당. 포카라는 등산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한식당이 많다. 백반 든든하게 먹고 잠이나 자자 해서 들어간 곳 ‘제로 갤러리’. (알고 봤더니 여기도 스토리가 있었쥬? 하하)

그리고 정말 말도 안되게 여기서 밥을 먹다 치트완 숙취 스쿼드 중 한 명인 니나를 만났다? 저 테라스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멍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익숙한 외국인이 지나가더라. 혹시나 싶어 ‘니나?’하고 불렀는데, 그녀였다!!!!!!!!!!!
오늘 포카라를 떠나는 걸로 알아서 따로 연락을 안했었는데, 내일 떠난다고 한다. 오늘 날씨가 안좋아 여행을 망쳐 슬퍼 저녁도 안먹었다는 그녀를 일단 옆에 앉혔다. 그리고 뭐라도 먹여야겠다 싶어 메뉴를 권했지만, 물갈이를 심하게 해 음식에 대해 두려움이 생긴 그녀는 흰 밥만 시키더라. 안타까운 마음에 반찬과 국 이것저것 시켜서 나눠먹으며 이런 운명같은 우연에 서로 ‘amazing’만 외쳤다.

포카라에서의 첫 날에 니나를 만나서였을까. 이 도시에서도 정말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다. (개인적으로 아프고 우여곡절이 많았을 뿐^^)
밥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몸을 녹인 후 숙소로 돌아가려했는데, 알고봤더니 옆 숙소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이런 걸 보면서 될 운명은 따로 있다고 하나보다. 또 다른 우연에 깔깔 거리면서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녀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 서로가 말 없이 꼭 안아줬다.
나는 그녀의 첫 세계여행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무튼 우리의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진심을 담아 작별인사를 나누고 윈드폴로 돌아왔다.
그 때 보이는 화로. 그리고 사장님의 한 마디. “고구마 먹고 가요. 김치도 있어요”


진짜ㅋㅋㅋㅋㅋㅋㅋ 엥? 네팔에서 고구마와 김치???!! 라고 생각했지만 그 때는 몰랐다. 내가 머무는 2주 동안 고구마와 김치를 건네는 사람이 될 거라는 걸. 그리고 그게 여기서만의 따뜻한 안부인사 였다는 걸.
다음 포스팅부터는 매일이 아닌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묶어 포스팅 예정이다. 매 포스팅마다 애정을 가지고 읽어주는 누군가에게 감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