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행/1. 네팔

(네팔/룸비니) 인연의 도시, 룸비니

센슬리 2023. 4. 4. 19:00

*내 친구 머니! 그리고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방문🙏🏾

대성 석가사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결심했다. 다른 숙소로 옮기기로. 동이 트며 새벽보다 조금 따뜻해진 침대에서 이불을 목 끝까지 올린 채 booking.com을 켰다. 툭툭이 안올 경우, 직접 캐리어를 옮겨야되기 떄문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예약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나의 추웠던 룸비니를 따뜻하게 해준 친구 머니를 만났다.

Heyyyy mony :)

석가사 사무동에 부탁해 툭툭을 잡고 아침 8시 30분에 Aloka Inn에 도착했다. 체크인 시간은 12시였지만 어제의 긴 여정과 추위로 지친 몸을 빨리 쉬고싶은 마음에 그냥 왔다. 프론트에 양해를 구하며 이른 체크인을 요청하니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다. 여느 네팔인들보다 큰 이마의 붉은 점을 찍은 친구가 다행히 방을 안내해줬다.

일반 더블룸 방이었지만 매트리스 있는 침대와 온수가 나온다는 말에 thank you를 한 10번 한 것 같다. 그러자 방을 안내해준 친구는 활짝 웃으며 아침 먹을 거냐고 물어봤다.
 


온수와 히터가 있는 따뜻한 10달러 짜리 방 ㅠㅠ


아침을 가져다주며 방을 안내해준 친구와 말을 텄다. 이름은 머니. 그리고 한국말을 했다. 머니는 한국에서 5년 동안 일을 했었기에, 한국어가 굉장히 유창했다. 치트완에서도 재밌는 만남이 있었지만, 모국어를 하는 누군가를 만나니 더 정이 가고 마음이 편안했다.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냐고 물어보니 비닐하우스와 돼지농장에서 일했다는 그. 근무지를 듣고 혹시나 나쁜 일을 겪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고 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네팔에 돌아왔지만, 기회만 된다면 다시 한국을 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K-POP 덕분에 외국에서 여러 환대를 받았었지만, 한국에서의 삶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으니 더 고마웠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그렇게 좋지 않은 편인데도 이렇게 좋게 기억해주다니. 그리고 뉴스나 기사들과는 달리, 그들의 좋은 고용주가 되어준 이름 모를 한국인들에게도 고마웠다. 덕분에 내가 이렇게 환대를 받으니.
 
이 때 다짐했다. 나도 한국에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만나면 먼저 손내밀어 주기로. 그럼 내 도움이 다른 한국인에게, 혹은 여성에게 다시 돌아갈 테니까.

맛있는 아침을 먹으며 머니와 즐겁게 얘기하고 낮잠을 잤다. 포근한 침대에서 자는 잠이란... 여기가 무릉도원이요... 깨달음을 위한 수행을 하려고 하지만, 추위 앞에서는 맥을 못추는 중생일 뿐이었다.

호텔 밖을 구경하려던 차, 근무시간이 끝난 머니가 '마야데비 사원'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마야데비 사원'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으로, 지도 맨 아래에 있는 곳이다.

 
그리고 룸비니 문화유산지구는 이 사원과 '평화의 파고다'를 위 아래 기준점으로 긴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있다. 그 직사각형 안에는 각 나라의 불교 문화가 반영된 사원들이 있다. 어제 내가 잤던 대석사도 마찬가지.
 
아직 길을 모르는 나로써는 너무 고마운 제안이었다. 바로 준비를 마치고 머니와 '마야데비 사원'으로 갔다. 호텔에서는 걸어서 20분 정도. 호텔이 있는 문화유산지구 외곽에는 원숭이와 비포장된 도로밖에 없었는데, 사원에 가까이 갈 수록 제법 정원의 모습이 갖춰졌다.

사원 입구 근처에는 제법 두꺼운 보리수 나무들이 있었고, 입구의 정확히 반대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색 파고다는 신성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은 저 뒤에 보이는 흰색 건물 안에 있다. 생각보다 너무 조촐하다고? 맞다. 왜냐하면 사실 부처님은 길 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부처님의 어머니가 출산을 위해 친정에 가는 길, 바로 저기서 부처님을 낳았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평일임에도 불구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나도 머니와 30분 정도 기다렸고, 그 줄 끝에는 돈을 던지는 곳이 있었다. 분위기 상 그곳이 딱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었겠지?

역시 사람들의 소망이 모이는 곳에는 돈이 있구나. 하지만 나 역시 돈을 던지며 두손을 모아 나만의 소원을 빌고 나왔다.
 


작은 사원을 나오면, 정말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난 1500년 전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펼쳐진다. 큰 보리수 나무와 펄럭이는 5색의 불경깃발, 그리고 그 아래 불경을 읊고 있는 사람들. 스님이 마이크를 잡고 얘기하고 있는 것 빼고는 정말 그 시대를 내 눈앞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평화로웠다. 흔치 않게 청명한 룸비니의 하늘 아래 펄럭이는 불경깃발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래서 나도 한 나무 아래 벤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곤 가져온 노트를 꺼내 그 때의 기분을 적었다. 바람에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은 게 얼마 만인지. 오늘 아침까지의 피로와 긴장도 어느새 잊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툭툭. 눈을 감고 바람을 맞고 있는 나를 누군가 쳤다. 뭐지. 하고 보니 귀여운 여자아이 2명이었다. 동양인 여자가 혼자 앉아있는 걸 보니 신기했나보다. 내가 적은 글씨를 보며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그리고 BTS를 아느냐 물어봤다.
 
또 한 번 느끼는 K-POP의 위대함. 내가 한국인인 걸 알자 그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하며 자기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두 자매가 서로 내가 먼저를 얘기하는 걸 보는데 얼마나 귀여운 지. 노트에 크게 이름을 써서 주니 이번에는 '안녕', '고마워'와 같이 간단한 한국 문장을 알려달라고 하더라. 계속 가르쳐달라고 하는 친구들이었지만, 8-9살 아이들의 해맑음은 나도 계속 미소짓게 만들었다.
한 30분을 놀았나. 가자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쉬워하는 아이들만큼 아쉬웠던 나는 셀카를 찍었다.


가면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어느 인도인 할머니가 오셔서 사진을 찍자고 하신다. 이 떄부터 시작된 사진 러쉬. ‘동양인이랑 찍은 사진이 행운을 가져다 주는 부적이라고 믿는 건가?’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계속되는 사진 요청에 셀럽이 된 느낌이었다. ㅎㅎ


그리고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을 찍은 인도인 남자애 2명 때문에 셀럽놀이를 그만두고 자리를 떴다.
허락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집요하게 번호를 물어보는 걸 상대하기 귀찮아서.

그렇게 ‘마야데비 사원'에서 평화롭게 3-4시간을 보내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집 오는 길 음식점에 들러 가볍게 맥주 안주들을 샀는데, 방 안에 식기가 없었다. 마침 머니가 프론트를 보고 있어 접시랑 포크를 요청했더니 레스토랑에 식기를 깔아주더라. 호텔에서도 맥주를 팔아 민망해하는 나에게 괜찮다며 편하게 먹으라고 자리를 비켜준 그.


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먹고 한 병 더 마실까 고민했지만 방에 들어가 쉬었다. 왜냐하면 내일은 나일과 다니엘을 만느는 날이니까 ^^! 숙취 squad is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