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행/1. 네팔

(네팔/카트만두) 벌써부터 밀려든 후회와 눈물의 중국닭볶음

센슬리 2023. 1. 14. 22:31

*오늘의 여정
- Asan Bazar ▶ 하누만 도카 + 더르바르 광장 ▶ 스와얌부나트 사원
 

Summary

1. 오늘 다녀온 곳들
- 너무나 혼잡했던 아산바자르, 더르바르 광장
- 화려한 색감의 스와얌부나트사원
2. 오늘의 생각
- 네팔에 왜 왔지. 난 여기서 무엇을 얻기 위해 온 걸까.

 
새로운 호텔에 짐을 옮기고 나니 벌써 점심 시간이 됐다.
15시간 비행 뒤, 네팔에 도착한 뒤에도 숙소 때문에 꼬박 하루를 스트레스를 받았더니 온몸에 근육통이 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그냥 아무생각없이 자고 싶었지만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내가 머물렀던, 그리고 지나온 '타멜'과 '아산바자르'는 카트만두의 중심 관광지다.
우리나라 인사동, 서촌 골목처럼 골목이 많은 곳이다.
서울과 다른점이라면 좁은 골목을 차, 오토바이, 인력거가 쉴새없이 다닌다.
차 피해서 한 걸음 떼면 뒤에서 오토바이 클락션 소리가 들리고, 지나가던 사람들과 자꾸만 부딪혔다.
게다가 차 매연과 즐비한 상점 옷들에서 나온 먼지들로 목이 답답했다.
 

아산바자르
합선 일어날 것 같은 전깃줄

 
"아. 나 지금 여기 왜왔지.
난 좀 조용히 쉬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시끄럽고 공기 안좋은 곳에서 사람에 치여야 하는 걸까. "
 
2일간 누적된 피로, 전날 추웠던 잠자리로 인한 감기기운으로 몸 컨디션도 엉망인데
카트만두 거리의 풍경도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달라 너무 짜증이 났다.
일교차 때문에 들고다니던 후리스를 바닥에 내팽게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기껏 여행온 곳에서의 '시간낭비 한다'고 느끼고 싶지 않아   
솟구치는 짜증을 삭이며 걷다보니 웅장한 건물이 보였다.
 

 
"친구. 화만 내기에는 시간이 아깝다고. 너 네팔에 왔어.
봐봐. 새로운 모습의 사원이잖아. 한 번 구경하고가"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국적인 건축양식을 보니 숨겨져있던 드디어 호기심이란놈이 발동했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길을 따라 걷다보니, 또 한 번 새로운 풍경이 눈을 사로잡았다.
 

 
참 화려한 신의 모습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저 신 동상을 보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길에 있는 신 동상에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높은 건물 앞에 있는 동상에 절하는 듯한 이질감이랄까.
네팔이 불교국가라고 알고 있었던 나는 저 신이 절 입구에 있는 사대천왕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네팔 국민의 80% 이상이 힌두교 신자고, 힌두교에는 3억 3천만명(?)의 신이 있다고 한다. 
신의 숫자 만큼 거리를 걷다보면 다양한 모습을 한 신 석상을 마주할 수 있는데 저 신도 그중에 한명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신기한 건 네팔에서는 힌두교와 불교가 서로 종교에 대해 굉장히 수용적이다.
힌두교에 신이 많기 때문에 부처도 신들 중 한명이다. 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정도냐면, 한 사원에 부처님 석상과 힌두교 신 석상이 같이 있을 정도.
문화적으로 굉장히 개방적인 나라인 듯하다.
 

나만 불편해 보이는 동거

 
사원 골목을 지나 나오니 큰 광장이 나타났다.
예전 카트만두 왕국의 왕궁 광장인 더르바르 광장이었다.
광활한 광장의 모습은 마치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왕궁 광장 느낌이었다.
허름하고 낡았던 시장 골목의 모습과 달리 번듯한(?) 모습의 광장을 마주하니 약간 놀라웠다.
 

 
이 광장 맞은 편에는 옛 왕궁인 '하누만 도카'가 있었다. 
딱 봐도 커보이는 왕궁을 들어가 걸을 힘이 없어 멀리서라도 보기 위해 근처 루프트탑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하지만 성의 성벽이 레스토랑 건물보다 높아 결국 성 안을 볼 수는 없었다.
 
'오늘은 뭔가 안되는 날인가보다.'라고 생각하고 치킨커리와 
낮술에 약하지만 답답한 마음에 술 한잔이 필요해 소머스비를 시켰다.
음식을 주문하고 의자에 널부러져있는데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바로 뒤가 여고생 6명 테이블이었는데 정말 미친듯이 떠들더라.
 
'네팔에서 고요함은 느낄 수 없는 건가?' 
 
또 다시 짜증이 펌프질을 시작하려 할 때, 수첩에 써놨던 이번 여행의 목표를 읽는다.
 
'솔직하기'와 '수용하기'.
 
"네팔을 선택한 것도 나고, 이 레스토랑을 선택한 것도 나다.
식당 안쪽이 아닌 테라스 자리를 선택한 것도 나다.
짜증은 문제 해결책이 아니고, 난 이미 여기에 왔다.
어쩌겠는가. 적응해야지.
그래도 히터와 온수가 나오는 숙소를 잡았고,
지금은 날카로운 오토바이 경적소리와 매연은 없지 않는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어쨌든 오늘은 '움직임' 자체가 목표이니,
내 목표로 인해 생기는 짜증, 기쁨 등 오늘 마주하는 모든 감정들을 수용하겠다. 라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열심히 움직이기 위해 밥도 열심히 먹었다.
 

 
저 오이와 당근은 피클인 줄 알았는데 그냥 생야채더라.
달달한 낮술과 밥으로 배를 채우고 내 상태를 확인한다.
예전 여행했던 것처럼 무작정 배회할 몸 상태가 아니라 목적지를 정했다.
네팔 여행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사진으로 접했을 '스와얌부나트' 사원.
 
지도로 찍어보니 6km 정도 나온다.
러닝으로 단련돼 5km 내외는 '=걸어갈 만한 거리'라고 생각하기에 목적지를 찍고 걸어가기로 했다.
 

 
물 건너 산넘어 가는 중. 계곡물이 상당히 더럽다.
도로에 걷는 게 나와 동네 주민들 뿐인 거리를 오르내리며
또 다시 사서 고생하는 이 여행의 현타가 올 때 즈음 멀리서 큰 나무가 보였다.
아마 마을의 보호수인 듯 했다.
그리고 그 앞, 마을 주민들이 정성스럽게 심어놓은 가로수들이 있었다.
나무를 고정시키기 위해 작은 돌을 쌓아놓은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돼 혼자 피식 웃었다.
 

\

 
약 1시간 10-20분 정도 걸어 도착한 '스와얌부나트' 사원.
누군가 타멜 근처에서 걸어갈 생각을 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라.
구지 이 길을 가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내가 올린 위 보호수와 가로수 뿐이다.
차라리 그 에너지를 아껴서 사원을 구경하시길 권한다.
왜냐. 이 사원은 산 중턱에 있어서 경사가 심한 계단을 많이 올라야하기 때문이다.
 

 
아무생각없이 사원까지 걸어갔다가,
70도 경사의 계단까지 오르니 사원 도착해서는 너무 힘들어 30분을 앉아있었다. 하하.
이 사원은 '원숭이 사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원숭이가 많은데,
그래도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원숭이들을 보며 가 기분좋게 올라갈 수 있었다.
 

멍키킹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스와얌부나트 사원. 
 

 
멀리서 보이는 사원 기둥의 눈이 가까워질 수록 느꼈던 신비감은
바로 앞 도착하니 압도감으로 바뀌었다.
사원이 물리적으로 큰 것은 아니지만 네팔에서 처음 만난 '네팔리'한 느낌이기 때문이었을까.
사원 기둥의 눈과 꼭데기에서부터 달리는 깃발을 보고 있으니
이걸 보기 위해 2일 동안 고생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교한 금속 장식 양 옆으로 펄럭이는 형형색색의 천들이 사원의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그냥 천인 줄 알았는데, 그림과 함께 글자가 써있다. 뭐라고 써있는 걸까.
 
하얀 석탑 주변으로는 청동 종 모양으로 한 것들이 둘러쌓여 있고, 사람들이 그 종을 만지며 사원을 한바퀴 돈다.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니 불교 경전이 써있고, 그 한바퀴가 경전 한 권이라고 하더라.
 

 
스와얌부나티 사원은 우리나라 사원과 달리 안쪽으로 깊었던 사원이다.
랜드마크인 사원탑을 주변으로 마을처럼 상점들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인공 폭포가 있다.
그리고 더 안으로 들어가면 카트만두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다.
 




 
상점들 사이 흰 구덩이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가까이서 보니, 저 구멍에서 흙을 파내는 것 같은데 흙이 하앟다.
그리고 그 앞에서 스님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뭐에 쓰이는 흙이길래? 궁금해하며 한 컷. 그리고 귀여운 동자승들도 한 컷.
 

 
멀리서 카트만두를 보니 왜 도시 공기가 탁한 지 알겠다.
거의 서울만큼, 아니 서울보다 더 인구 밀집도가 높더라.
 
가뜩이나 컨디션도 안좋은 상태에서 2만보 이상 걸으니 나중엔 어지러웠다.
이제 숙소로 가야할 타이밍. 떠나기 전 마지막 스와얌부나티사원과 함께 셀피.
 

 
원래 숙소까지도 걸어서 갈 예정이었으나, 텍시타고 타기로 결정.
이 때까지만 해도 네팔 번호가 없어서 텍시를 잡고 흥정해야 했다.
처음에 1천루피 부르길래 NO 하며 500까지 깎아서 왔다.
그리고 나중에 Pathao App 확인해보니 350 루피 정도더라.
 
어찌저찌 호텔 근처 도착하니 5시 쯤.
네팔의 밤은 경험해본 적 없기 때문에 음식을 사와 호텔에서 먹기로 결정.
몸이 힘들어서 그런지 매운 게 엄청 땡기더라. (역시 한국인)
마침 내가 있던 숙소는 중국인 거리에 있었고, 꽤 많은 중국 식당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한 그림. 아주 매운 태국 고추와 고기가 버무려진 사진이었다.
 

생수통에 가려진 곳에 나를 유혹한 사진이 있다.

 
그리고 집 오는 길 슈퍼에 들려 310Rs주고 산 고르카 비어와 함께 술상 세팅.
 
깔끔하게 샤워하고 맥주 한 잔과 함께 밥을 먹는데 괜히 울컥하더라.
어제부터 내 머릿 속을 헤집는 생각. 
 
"왜 사서 고생이지."
 
내 생각과 다른 네팔 분위기.
마음을 가다듬기에는 너무 정신없는 환경.
첫 날의 숙소 때문에 처음부터 뭔가 꼬여버렸다는 부정적인 생각.
 
그래도 역시 한국인이라고 
음식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고추를 먹으며 정신을 한 번 아찔하게 만들고 나니 이성이 돌아오더라.
 
"그래. 나 이럴려고 네팔 왔다."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이번 여행의 목표.
난 엄청난 걸 깨달으러 온 것도 아니고, 자연 속에서 하루 종일 명상하러 온 것도 아니다.
그냥, 다른 환경에 나를 던져놓고 살아남는 경험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살아남는다고 쓰기에는... 한 편으로는 너무 거창할 수도 있지만)
 
내일은 더 재밌을 거야. 행복할 거야 등의 기대 섞인 주문보다는
어제 오늘, 힘들었던 하루를 받아들이고 그걸 잘 이겨낸 내 자신을 위해 맥주 한 잔 하며.
 
진정한 네팔에서의 첫 째날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