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바르도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멀리서 수련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있는 그녀에게서 정말 빛이 났다. 팟캐스트로 들으며 상상했던 모습보다 밝고, 단단해보이던 '김도인'은 오랜만에 '리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작가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말 한마디도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말했던 작가 당신처럼 이 책의 문장들도 그렇게 쓰인 느낌이었다. 한 자 한 자 펜으로 꾹꾹 눌러 쓴 느낌. 프린팅 된 책인데도 그런 느낌이 났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쓰인 문장 같은데도 쉽게 읽히지 않았다. 비유가 많아 더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소설 작가이기 전부터 그녀를 알았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소설 속 주인공 '리하'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주인공이 겪었던 감정의 깊이들은 모두 작가로부터 나온 듯 했다. 몇 년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사람들의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연민이 자연스레 생기는 나인데 그녀의 슬픔에는 감히 마음을 내밀 수 없었다. 아니, 내가 인생을 살면서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슬픔이라 일부러 몸을 돌리는 게 맞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정도로 너무 아프고, 심연의 슬픔을 겪었기 때문에 그녀는 빛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진심으로 빛나지 않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일부러 슬픔만 확대해서 보는 게 아닐까. 사람마다 잘 느끼는 감정이 있는데 이 작가는 유독 '슬픔'만 반응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 자신을 던져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작용과 반작용처럼 그녀가 너무 큰 슬픔을 견뎠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의 범위도 커진 걸까. 그렇다면 그 사랑을 다른 사람보다 본인을 위해 썼다면 어땠을까. 앞으로 나올 책들이 3권이나 더있고, 그 책들은 '리하'가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이 나오겠지만 이번 책에서 갈갈이 찢어진 그녀가 너무 안타까워서 불평을 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가 역시 '리하' 같은 삶을 살았을 것 같아 더더욱.
바르도 소설에는 지난 명상 수업들의 내용이 녹아져있다. 재현이 슬픔을 마주하기 위한 '인사이드 무비' 명상법, '기억의 서', '길을 안내하는 자, 바르도'. 지칭하는 단어들은 다르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그래서 더 몰입이 잘됐다.
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길을 잃은 사람들의 안내자가 되고 싶다.는 주인공과 작가. 한창 방황했던 시기 나에게 명상을 알려줬던 그녀는 이번에는 마음에 나침반을 하나 놓고 갔다.
인생이 바뀔 때 길을 잃게 된다.
하나의 인생은 끝났지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과 인생과 인생 사이를 바르도라고 한다.
바르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서원이 필요하다.
서원은 잊지 않으려고 마음에 새긴 소원이다.
이미 끝나버린 인생이 아니라 아직 시작되지 않은 인생을 향해 가는 거다.
이미 끝나버린 인생이 아니라 아직 시작되지 않은 인생을 향해 간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무엇일까.
얼마 전 우연한 술자리에서 이 서원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직업적 소망과 인생의 서원이 뒤엉켜있었는데 그 때의 대화로 명확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삶 살기.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10년 전처럼 흔들리는 나를 앉혀놓고 눈을 가리고 질문을 한다.
그 때는 '지금의 너는 어떻니?' 였다면 지금은 '네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니.'다.
그리고 움직이게 한다. 지금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