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1. 책

(책) 대도시의 사랑법

센슬리 2023. 9. 5. 18:36

 

 

난생 처음 본 날 것의 연애 소설책이었다. 연애소설이니 당연히 감정 표현이나 상황 묘사에 솔직하겠지만, 작가가 이 책에 담아낸 솔직함들은 오히려 내가 눈치볼 정도로 날 것이라 느껴졌다. 마치 밖에서 옷을 벗고 돌아다니는 당사자는 주변을 하나도 신경쓰지 않는데 나만 혼자 전전긍긍하는. 아마 한국 사회에서 자유롭지 못한 퀴어인 주인공의, 자유로운 연애가 그려져서 더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변의 퀴어인 친구들이 떠올랐다. 얼마 만나보진 않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화법이 있는데, 이 작가의 글에서도 그 화법이 뭍어났다. 시니컬하고 냉철한데, 감정의 결에 굉장히 디테일한. 1인칭 시점으로 묘사가 될 때면 그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귀와 눈에 어른거려 혼자 킥킥 웃으며 읽었다.

 

그리고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주변의 여러 인물들이 생각났다. 밝아보이는 모습 만큼 길게 드리워진 내면의 그림자를 품고 사는, 본인의 행복에 대해 기대감은 높지만 그만큼 불안감도 높은 사람들. 사랑을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본인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에 주변인을 밀어내는 외로운 사람들.

 

소설의 마지막 파트에서 주인공이 규호를 그리워하는 글을 읽으며 엉엉 울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에 스스로가 맞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감정이 뭔지 깨달은 그 마음이 너무 서글펐다.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찾아온 몇 번의 불행을 겪다보면 자연스레 불행이 내 삶인 것 같고, 나는 행복해질 수 없다보다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내가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어느 한 사람이 그런 자격을 갖췄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찾아온 것들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삶은 +,-,0라 힘들었던 만큼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하지만 그 말은 힘든 시간을 견디는 사람에게 "이 만큼 힘들었으니 곧 행복이 올거야."라며 지금을 벗어나고, 오지 않을 미래에 맹목적인 기대만 하게 만든다. 

 

그렇게 말고. 내가 먼저 자격을 따져서 이렇게 저렇게 나누지 말고. 힘들면 힘든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을 흘려보내며 살았으면 좋겠다. 완벽은 순간적인 상태일 뿐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을 허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맞춰나가는 완성을 위한 단계들을 천천히 연습했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