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여정
- TO 룸비니! & 대성 석가사

삐비비빅-. 알람 소리에 눈이 떠진다. 아직도 화끈거리는 얼굴. 어제 몇 병의 맥주를 마셨는지 모른다. 내가 아는 건 단 하나, 8시 30분까지 로비로 가야한다는 것.

룸비니의 온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우선 씻기로 한다. 분명히 내가 맞고 있는 물은 미지근한데, 왜이렇게 화끈하게 느껴지는지. 나이가 들은 걸 이럴 떄 여실히 느낀다. 대학생 때는 얼굴이 빨개지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아침까지도 유지되는 이 화끈거림이 얼마나 불편한 지 이제야 알겠다. (그렇다고 술을 줄이지는 않는, 어리석은 중생)
뇌의 절반만 쓰는 듯한 느낌으로 짐을 쌌다. 이 느낌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쪽 눈을 감고 짐을 쌌다면 더 와닿으려나. 아무튼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짐을 싸고 숙소 문을 잡고 방을 돌아봤다. 혼자였던 네팔 여행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준 치트완의 파크랜드. 혼자 여행에 지쳐 친구가 필요한 누군가가 이 블로그를 본다면, 그가 만약 치트완을 갈 계획이라면 도움이 되기 위해 파크랜드 사진을 남긴다.



짐을 챙겨 조식을 먹으러 나왔다. 사실 배는 1도 안고팠지만, 먼 길 가는 여정을 위해 간단하게 조식을 먹었다. (버스를 타고 1시간 동안은 조식을 먹은 나 자신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숙취로 고생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탄수화물과 계란, 우유와 오렌지. 술 마신 다음날이면 왜 그렇게 당기는 지. 산이라 위에도 안좋은데, 꼭 이런다.

조식을 먹으며 어제 같이 놀았던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기다렸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먹은 750ml 맥주 3병이 그정도는 아닐텐데. 라는 생각을 할 떄 내 앞에 수척한 다니엘이 지나갔다. 웃긴 건, 서로가 서로를 못 알아 봤다는 것. 어제는 거의 남매였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니엘은 속이 너무 안좋아 물을 마시러 나왔다면서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한국에서나 네팔에서나, 한국인이나 호주인이나 다 똑같구나. (그리고 룸비니에 도착한 이후 이들이 각자의 이유로 얼마나 아팠는지 알게되었다.)
마지막 바나나를 마무리하던 중, 어제 함께 사파리 투어를 했던 네팔리 가족들이 와서 인사를 건넸다. 한국에서 일을 했었다며, 나를 반갑게 맞아주던 아저씨는 오늘도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영어가 짧아 단편적으로 얘기했지만 그와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환대는 참 따뜻했다. 본인들도 룸비니로 가는 일정이라 같이가기를 제안했지만, 숙취와 함께 한국인으로서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던 나는 원래대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8:30. 약속한 시간대로 로비에 도착하니, 그간 인사를 나눴던 파크랜드 직원들이 모두 나와 잘가라는 인사를 건네주었다. 음. 아주 짧은 시간, 얕게 맺은 인연이었지만 치트완에서 마지막을 위해 모여준 그들이 참 고마웠다. 감사하다는 인사 후 지프차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다들 NOT THAT CAR라고 외친다. 내가 타고온 이 차가 아니라 뭐지? 하고 그들의 손을 따라가보니 wow.

HEY!!!!!!!!!!!!!! IT'S A CAR!!!!!!!!!!!!!!!!!!!!!!!!!!!! 감사하게도 차가 있었다. 그렇게 그의 차를 타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퐁퐁 튀어오르는 캐리어를 잡지 않아도 되는 게 얼마나 편안한 지. 그리고 도착한 버스정류장.

카트만두처럼 역시나 '버스' 탑승을 위한 게이트는 따로 없었다. 치트완의 버스정류장 역시 티켓을 파는 창구와 과일과 과자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있었을 뿐이었다. All Inclusive PKG에 룸비니 가는 버스도 포함되었던 터라,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준 직원이 카운터에서 룸비니 티켓을 끊고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는 Follow Him이라는 말을 남긴 채 그는 떠났다.

종이의 질이 참 좋은 버스 티켓. 출발시간은 9:30이었지만 10시 즈음 버스가 왔다. 시간이 늦어진 건 상관없는데... 8시간을 달려가야하는 버스 치고는 크기가 많이... 작았다...

내가 치트완에 올 때의 버스 크가와 같다고 하겠지만... 보이는가. 저 창문 사이로 다닥다닥 붙은 의자들이? 설마 하는 마음에 여러번 룸비니가는 버스가 맞느냐 물어봤지만 그들의 대답은 몇 번이고 YES. 버스를 타려는데, 내가 가진 짐은 큰 캐리어 1개와 백팩. 근데 차 안에는 트렁크가 따로 없다. 캐리어를 가르키며 모르겠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니, 그는 위를 가리킨다. 그렇다. 네팔 로컬버스는 트렁크에도 사람을 태워야하기 떄문에 천장에 짐을 싣는다.^^ 28인치 캐리어를 저 사다리 위로 올리는 것부터 곤욕이었다. 무거운 게 문제가 아니라, 위에서 저걸 받아야하는 사람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나야 승객이라 그가 잡을 만큼의 거리만 확보해주면 됐었지만, 버스보이는 그걸 아래에서부터 끌어올려 위에 고정을 해야했다.^^ 보이는가, 파란색 노스페이스 점퍼를 입고 하염없이 버스 위를 바라보는 그녀가. 내가 그랬다. 미안하고, 어이없고, 뭐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 떄문에...
어찌됐던 버스에 탔고, 나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1-2시간 동안 어제의 파티를 후회했다. 네팔의 길은 왜 때문인지 전부 공사 중이었고, 그 길을 달리는 버스는 거의 롤러코스터였다. 창가에 머리를 기댔지만 어느 순간 손잡이에 머리를 몇 번 박으면서 '이건 잘못됐다' 라는 생각은 오백번도 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절대 불평할 수 없었다. 뒤에는 내가 앉은 앞자리보다 더욱 콩나물시루 같았기 떄문에...(그리고 나 다음 날 온 Nile과 Daniel도 나와 같은 과정을 똑같이 겪었더라)

다들 내가 사진 찍는 건 어떻게 아는 건지. 버스기사 바로 뒷자리에서 이들보다 편안하게 간다고 자기최면을 외우며 3시간을 달려갔을 때 쯤 왼쪽 엉덩이에 감각이 없어졌다. 출발하고 30분 후부터 계속 불편해 엉덩이 밑에 손을 대기도 하고, 수면베게를 밑에 깔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4시간 쯤 되었을 때, 현지 문화 체험이고 뭐고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사진 속 오른쪽 검은색 비니를 쓴 버스보이에게 말을 걸었다.
"진짜 미안한데, 나 엉덩이 없어질 거 같아. 좀 더 넓은 자리 없니?"
그는 처음에 'Sorry'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눈에서 간절함을 읽은 걸까. 몇 분 후 어깨를 톡톡 치더니 '1.5km 후에 자리를 바꿔줄게' 라고 얘기했다. GOD BLESS ME! 1.5km를 30분 넘게 갔지만 나는 행복했다. 오르막길이건, 공사중이건 1.5km는 어쨌든 지나갈 거고, 남은 4시간을 엉덩이를 보존한 채 갈 수 있으니까.
높은 산 하나를 넘어 마침내 도착한 1.5km에서 버스보이 뒤에 앉은 노모와 아들이 내렸고, 버스보이는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 말 몇마디 섞었던 파란 노스페이스의 중국인 여자도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그녀 역시 나만큼 힘들어 보였기에... 자리를 옮기니...^^ 천국이다. 일단 다리를 뻗을 수 있다. 도로가 덜컹거리면 의자의 머리 부분이 같이 솟았다 내려갔다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내가 모든 힘을 엉덩이에 주지 않아도 된다. 네팔에 와서 감사함이 많아졌다. 한국에서라면 고객센터에 컴플레인 걸 생각부터 했겠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에 있다보니 모든 걸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되더라.
자리를 바꾼 후 약간의 편안함에 졸고 있을 때 버스보이가 날 깨웠다. 룸비니에 도착했니? 하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한다. 그럼 왜 깨웠지? 하고보니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더라. ㅋ 분명히 파크랜드에서 들었을 때는 그런 말 없었는데... 얼른 내려야한다고 얘기하는 그에 말에 따라 우선 내렸다. 버스 천장에서 내리는 나의 보라색 트렁크를 잠결에 받고보니 카트만두처럼 매연이 가득한 도시더라. 어딘지도 모른 채, 'LUMBINI'만 외치자 같은 버스에서 내린 듯한 네팔리가 본인을 따라오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한 10분 쯤 걸어 LUMBINI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크기와 내부는 치트완에서부터 타고온 버스와 동일했다. 다만, 이 버스는 더 자주 섰다. 분명히 구글 맵에서 말하길 룸비니까지 30분이었는데 1시간 후에 도착했다. 일단 사람이 길가를 걸어가면 서고 보더라. 그리고 시내버스 버스보이들은 뭐랄까... 매드맥스의 워보이 같았다. 그들은 한 팔만 문에 걸친 채 알아듣지 못할 목적지를 외치면서 행복해하더라.

헨젤과 그레텔처럼 길에 보이는 사람을 다 태우니 버스는 어느새 만원. 탄 지 10분도 안되어 룸비니 버스에서와 같이 신체부위 중 하나가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더이상 말할 힘도, 기다리고 기대할 힘도 없더라. 구글 지도에 현재 위치를 가르키는 파란 점이 얼른 룸비니 사원 지구에 닿기를 바라며 새로고침을 할 뿐이었다. 백 번쯤 했을까. 'LUMBINI'라며 매드맥스 버스보이가 얘기했고, 나는 몸을 끌고 나왔다.
룸비니 사원지구는 생각보다 초라(?)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 있는 구역이기에 나는 우리나라나 일본의 사원처럼 정갈하고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몇 개 없는 메인거리의 상점 뒤의 거리는 흙으로 된 비포장 도로였고, 그 때문에 메인도로에도 뿌옇게 먼지가 끼었다. 세계문화유산 지구라고 하기에는... 정말 볼 품 없었다.
'부처님이 태어난 곳'이라는 문장 하나에 룸비니를 선택했기에 실망 역시 내 몫이지만 8-9시간의 신체적 고통을 견딘 후 마주한 룸비니의 풍경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달려드는 툭툭 기사들 때문에 더욱 피곤해졌다. 그래도 아직 희망이 남았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신성한 장소를 기리기 위해 세계 각지의 절이 있는 룸비니 사찰지구에 있는 한국절 '대성 석가사'가 남았다. 실망에 잠겨있기보다는 편안하고 행복했다는 후기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많은 툭툭 기사들 중 300Rs로 쇼부를 치고 뒷 자리에 아무말 없이 앉아 석가사로 향했다.
룸비니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고즈넉하지만 위엄있게 자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석가사'는 너무 스산했다. 심지어 문도 잠겨있어 툭툭기사와 여기가 맞냐, 아니냐며 5분 넘게 입씨름을 했었다. 답답했던 툭툭 기사는 닫혀있는 문을 두드려 사람을 불렀고, 그와 몇마디 이후 '석가사'의 문이 열렸다. 하루종일 기대하던, 그리고 나의 조국 한국 절의 문이 열렸지만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저녁 안개가 낀 탓에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문을 열어준 사람을 따라 절 내부로 들어가 체크인부터 했다. 하루에 500Rs. 몇 일을 머물거냐고 물어보길래 하루를 얘기했다, 원래 계획은 3박 4일이었지만, 혹시 몰라 우선 하루만 얘기했다. 숙박료는 후불. 방을 배정받은 후 저녁식사 시간이라는 그의 안내에 맞추어 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은 우리나라의 절들처럼 '비건'의 '자유배식'으로 되었다. 외부에 테이블이 별로 없어 핀란드와 캐나다에서 온 사람들과 합석해 저녁을 먹었다. 놀라운 건, 한국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 뿐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명상'과 '요가'를 수행하는 사람들이었고, 주변 같은 수행을 하는 지인들에게 추천받았다고 했다.
식사 후, 안으로 들어가니 세면장 같은 설겆이 공간이 있었다. 핀란드 친구는 '이게 한국 스타일이냐' 라고 물을 만큼 예전 우물을 퍼서 쓰던 시대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었다.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 쪼그려앉아 겹겹이 쌓여있는 비누 잔해를 묻혀 설겆이하는 모습이 참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그릇 진열대 옆에 놓여있는 미숫가루는... 뭐랄까... 공짜로 주는 게 감사하지만 딱히 끌리지 않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석가사' 룸 내부로 들어간 순간, 왜 수행하는 이들 사이에서'만' 유명한 지 알게됐다. '석가사'는 우리나라 여느 템플스테이 절과는 달랐다. 이런 표현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원시적인 절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느껴졌다. 절을 구성하는 재료인 나무와 돌이 그대로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따뜻할 땐 덥고, 추울 땐 추운.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다. 왜냐하면 이곳에서의 1박 삼시세끼 포함 겨우 500Rs였다. 네팔 물가를 비교해도 굉장히 싼 가격이다. 즉, 거의 공짜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해도 무방한 가격이었다.
다만 내가 그런 환경과 맞지 않았을 뿐이다. 추위에 약한 나는 난방이나 전기장판 같은 현대문물이 매우 필요했다. 또한 따뜻한 수증기가 세어나가지 않을 수 있는 막혀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석가사에는 난방은 전혀 없었고, 온수로 샤워하기도 힘든 컨디션이었다. 매일 저녁 7-9시까지 2시간 동안 온수로 샤워할 수 있었지만, 커튼으로 가려져있던 창문으로 따뜻한 수증기가 다 세어나가 바가지로 온수를 몸에 끼얹는 순간 그 전보다 더 심한 추위를 경험할 뿐이었다.

하지만 여느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야밤에 이동할 수는 없었다. 네팔 첫 날 숙소였던 'Elbrus Home'에서처럼 가방에서 온갖 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침낭 안으로 핫팩을 터트려 몸을 웅크렸다. 룸비니를 방문하는 것도, '석가사'에 숙식하는 것도 내 선택이었다. 9시간의 대장정 끝에 후회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던 나는 대충 짐을 정리한 후 침대에 누웠다.

날이 밝는 대로 숙소를 옮기겠다는 다짐을 하며 빨리 이 저녁이 가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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